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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북 영덕 철암산

그윽한 솔향 맡으며 느릿느릿 힐링 산행…동해 비경은 덤

해발 고도가 180m에 불과한 경북 영덕군 병곡면의 철암산은 높이의 잣대로만 따져선 안 된다.

 

산마다 고유의 매력이 있다. 높이만 중시할 경우, 철암산의 가치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철암산의 매력은 울창한 솔숲 사이로 난 호젓한 산행길에 있다.

 

마른 솔잎이 솜이불처럼 깔린 길인 데다 숨이 가빠 허덕일 만큼 경사가 급한 곳이 없어, 하늘로 쭉쭉 뻗은 늠름한 소나무들을 이모저모 눈여겨 보고 싱그러운 솔향을 한껏 맡으며 느릿느릿 '게으른 산행'을 하기에 그만이다.

 

걷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잠겨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어 가도 좋다.

 

산행은 철암산을 타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하산 후 길은 동해안 해파랑길로 이어진다. 산에서 빚은 생각의 습기를 바닷바람에 말리며 만행(漫行)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병곡면 영1리에서 시작해 정상과 해파랑길을 거쳐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8.5, 소요시간은 4시간 남짓이다. 1리 마을 입구에서 철암산으로 접어든다. 5분쯤 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정상 쪽으로 길을 잡는다.

 

깻잎 밭두렁을 지나 30분가량 걸으면 만나는 사거리에선 가운데 범바위 쪽으로 직진한다.

 

20분쯤 더 가면 정상이다. 솔숲은 산행 초입부터 정상 바로 밑까지 이어진다. 정상에 서면 산행 진행 방향으로 칠보산, 오른쪽으론 광활한 동해 바다, 왼쪽으로는 등운산이 펼쳐진다. 정상에서 칠보산 쪽으로 100m가량 가면 아담한 정자가 나온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정자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물마루는 하늘로 흐르는 듯 경계가 모호했다. 이 모습을 보며 사물의 경계란 구분인 동시에 혼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자에서 되돌아나와 백석리 쪽으로 내려가면 이내 제3금광굴 표지판을 만난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산비탈에 두 개의 굴이 뚫려 있었다. 굴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은걸음으로 진입해야 할 정도로 낮고 좁았고, 안에는 서늘한 냉기가 고여 있었다

 

굴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3 금광굴에서 5분쯤 내려간 곳에는 수직굴(2 금광굴)이 뚫려 있었는데, 안에는 박쥐가 서식하고 있었다. 1 금광굴은 보지 못했으나 '3'이란 숫자를 미루어 철암산에 최소 3개의 금광굴이 있음을 짐작게 했다  

 

하산 후 영덕군에 금광굴의 유래를 물어보니 담당자가 "일제 때 금광석 채굴을 위해 뚫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3, 2 금광굴 사이에 '보물도난자리'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담당자는 이 유래는 알지 못했다.

 

 

2 금광굴에서 5분쯤 내려가면 나오는 솥바위의 왼쪽으로 돌아 하산한다. 솥바위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조개 화석이 있다. 호수였던 이곳이 중생대 말기에 화산이 분출해 퇴적됐다가 신생대 들어 노출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10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국도에 이른다. 도로 밑 터널을 통과해 백석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병곡휴게소를 거쳐 50분가량 가면 고래불해수욕장 용머리공원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일제의 수탈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가 한반도의 지기를 끊어 위인의 탄생을 막기 위해 전국에 쇠말뚝을 박을 때 병곡면에는 용머리바위를 지목해 악행을 저지른 뒤 은폐하려고 그 위에 팔각정을 지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5년마다 지내는 풍어제를 용머리바위에서 시작한다.

 

'고래불'이란 지명 유래도 흥미롭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이 이곳 앞바다에서 고래가 등 위로 물을 내뿜으며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고래불(불은 ''의 옛말)'이라 부른데서 연유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실제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되기 전까지 이곳에 포경선이 많이 찾아왔으나, 20005월 길이 8m짜리 큰이빨부리고래가 죽은 채 발견된 뒤로는 고래의 종적이 끊겼다고 한다.

 

고래불해수욕장 입구에서 영해면 쪽으로 10분쯤 해안길을 걸으면 왼쪽에 콘크리트 농로가 나온다. 농로를 따라 출발지로 회귀한다  

 

 

고려말 문신 목은 이색 생가터한옥 전아한 풍취 물씬   

 

 

영덕에는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생가터가 있다. 영해면 괴시리로, 이번 산행지인 병곡면 영1리에서 차로 10분가량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목은은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삼은(三隱)으로 불렸다. 정방을 폐지하고 3년상을 제도화하는 한편 김구용 정몽주 등과 강론하며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또 그는 우왕의 사부였다. 위화도 회군 후 창왕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목은은 이를 사양하고 초야에 머물며 고려의 유신으로 생을 마쳤다.

 

괴시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생가터에는 현재 목은 석상과 함께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구름이 머물레라/반가운 매화는/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홀로 서서/갈 곳 몰라 하노라'. 생가터에는 망한 왕조의 비운을 읊은 이 시를 비롯해 네 수의 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괴시(槐市)'란 지명은 목은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마을은 도랑과 못이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으나, 목은이 중국 원나라에서 벼슬을 한 아버지를 따라 머물다 돌아와 그곳에서 교유한 학자 구양현이 사는 마을과 자신의 고향 풍경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이름(괴시)을 붙였다고 한다. '' 자가 회화나무를 뜻하는 것을 미루어 당시 마을에 '회화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괴시마을은 현재 영양 남씨의 집성촌으로 이뤄져 있다. 30여 채에 달하는 전통 한옥이 잘 보존돼 있어 전아한 풍취를 자아낸다. 목은 생존 당시부터 있었던 호지인지는 몰라도 마을 앞에 연꽃이 만발한 못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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